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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도서 리뷰] 위버멘쉬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기한 당신에게 전하는 니체의 해답

by toxictfrog 2026. 2. 26.

 

 

니체 '위버멘쉬' 뜻, 원전을 포기한 당신을 위한 초인 철학 정리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멘쉬 리뷰

서론: 원전의 높은 벽 앞에서 만난 새로운 길

요즘 철학과 인문학이 대중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하며 인기 있는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나 또한 그 흐름에 편승하여 철학의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비유, 상징적인 문장들 앞에서 커다란 벽을 느꼈고, 결국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채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그렇게 좌절하던 중, 서점에서 《위버멘쉬》라는 책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흔히 '초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단순히 완벽한 인간이나 현실을 초월한 영웅을 뜻하는 것일까. 실제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위버멘쉬는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질문, 즉 "어떻게 하면 남이 정해준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긍정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답변에 가깝다.

나처럼 원전의 높은 벽 앞에서 포기를 경험했던 독자라면, 이 글을 통해 위버멘쉬라는 개념을 조금 더 쉽고 명확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시작은 가볍지만, 그 안에서 얻는 통찰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1. 초인이 아니라 '극복인'이다: 위버멘쉬의 진짜 의미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흔히 영어권의 '슈퍼맨(Superman)'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니체가 지향한 존재는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자기 극복의 존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을 넘어서'를 뜻하는 '위버(Über)'와 '인간'을 뜻하는 '멘쉬(Mensch)'가 합쳐진 단어로, 고정된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가는 역동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위버멘쉬란 타인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어제의 나약한 나를 이겨내고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을 말한다. 니체는 인간을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이라 표현하며, 우리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나아가는 도상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자기 극복'의 과정이야말로 허무주의 시대에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2. 니체가 말한 정신의 3단계: 낙타, 사자, 그리고 아이

니체는 인간이 위버멘쉬로 향하는 과정을 세 마리의 동물을 통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낙타'의 정신

낙타는 사막에서 주인이 지워주는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걷는 인내를 비유한다. 여기서 짐이란 현대 사회에서의 좋은 직장, 좋은 차, 결혼 같은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 나를 맞추려 욕망을 억누르는 삶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는 외부의 명령에 순종하는 단계다. 니체는 이 단계를 무가치하게 보지 않았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져 본 자만이 자기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 '사자'의 정신

이는 단순한 반항이 아닌,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저항의 의지다.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거나,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말하는 용기가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사자는 부정의 힘은 가졌으나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창조의 힘은 아직 부족한 과도기적 존재다.

마지막 단계: '아이'의 정신

아이는 과거의 상처나 실패를 망각하고 매 순간을 순수한 놀이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놀이의 규칙을 만들며, 자기만의 가치를 긍정하며 춤춘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된 허무한 세계를 슬퍼하는 대신, 그 빈자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채워 넣으며 매일을 축제처럼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아이 같은 위버멘쉬다.


3. 운명을 사랑하는 힘, 아모르파티(Amor Fati)

위버멘쉬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아모르 파티(운명애)'다. 니체는 "너의 삶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영원히 반복된다면, 너는 그 삶을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영원회귀'의 질문을 던진다. 대다수는 고통스러운 과거 때문에 답을 망설이지만, 위버멘쉬는 고난마저 삶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인다.

 

이 대목에서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가 떠오른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라는 가사는 니체의 철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가슴 뛰는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는 위버멘쉬의 유희와 닮아 있다. 이제 단순히 흥겨운 리듬으로만 들리던 이 노래를, 내 삶을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철학적 고백으로 느끼며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모르파티의 의미를 녹인 김연자의 수록곡 아모르파티


결론: 타인의 궤도를 이탈해 나만의 축제를 시작하다

니체의 철학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SNS 속 타인의 시선에 갇힌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지침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난해함에 책장을 덮었던 나 역시, 이제는 나의 일상을 통해 위버멘쉬를 실천하려 한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한 점이다. 사회적 성공에 나를 맞추려던 '낙타'의 성실함을 내려놓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의 망각'을 연습하며 실패조차 온전히 긍정하게 되었다. 모두가 정한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지만, 그 이탈이야말로 진정한 나만의 우주를 만나는 축제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오늘의 나를 넘어서는 '극복인'으로서,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자유로운 위버멘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