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군중 속의 고독과 마주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곁에 많은 사람을 두고도 문득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관계의 홍수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 때, 200년 전 철학자가 던지는 날카로운 독설은 오히려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필자 또한 타인의 시선에 유난히 지쳐있던 시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흔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고통만을 강조하는 냉소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는 누구보다 인간이 인생을 주체적으로 잘 즐기길 바랐던 학자였음을 알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시선에서 기인하는 가공된 행복이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을 통해 얻는 진정한 평온을 강조한다. 이 책은 겉만 화려한 행복의 신기루를 쫓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내면을 돌보고 고요한 평온을 찾는 구체적인 지혜를 빌려준다.
1. 타인의 평가는 행복의 거처가 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 중 상당수가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타인의 머릿속을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거주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장소"라고 정의했다. 남들의 시선에 지쳐있던 나에게 이 문장은 형언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거 직장 상사가 나의 실수를 호되게 질책했을 때, 나는 며칠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괴로워하며 그 평가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를 몰아붙이던 그 상사조차 결국 본인의 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으며 전전긍긍하던, 그저 자기 앞가림에 바쁜 평범한 존재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사람들 역시 각자의 결핍과 싸우는 불안한 개인일 뿐인데, 나는 왜 그들의 입술 끝에서 나오는 찰나의 말에 내 인생 전체의 가치를 맡겼던 것일까.
쇼펜하우어는 타인의 찬사가 우리 내면의 빈곤을 결코 채워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건강, 지능, 성격처럼 내가 직접 소유하고 체감할 수 있는 내적 자산만이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지반 위에 나의 평온을 구축해야 할 때임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배운다.
2. 고독, 지적인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사치
쇼펜하우어 철학의 정수는 '고독'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는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결함이 많은 존재이기에, 타인과 섞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깎아내거나 위선을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홀로 있을 때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나 또한 20대 중반 방황하던 시절에는 친구 없는 시간들을 견디지 못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한 마음에 약속 뒤에 또 다른 약속을 억지로 만들어내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결코 가만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되돌아보니, 당시의 나는 내면의 빈곤을 타인의 목소리로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늘어났고, 그제야 고통스럽게 '고독'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여야 했던 기억이 난다.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관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고독은 단순히 외톨이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기 충족적' 상태를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일수록 고독을 선택한다고 보았다. 내면이 빈약한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과 소음을 찾아다니지만, 내면이 풍요로운 사람은 자신의 사유와 예술, 철학적 성찰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곁에 사람이 많아야만 안심하는 습관은 결국 나를 타인의 노예로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독립이자 어른의 자세다.
3.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평온에 이르는 법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하며, 인간의 욕망이 결코 완전히 채워질 수 없음을 경고한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잠시 기쁨이 찾아오지만, 이내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거나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 밀려온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 가진 것 중에서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행복을 적극적인 즐거움의 획득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로 정의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예전에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지루한 것이 가장 고급스러운 행위이다"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비추어 보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곧 삶에 당장의 커다란 고통이나 결핍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잔잔한 상태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흔한 말처럼 행복은 저 멀리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내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춘 화려한 생활을 쫓다 보면 우리는 항상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갖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본성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건강, 평화로운 오후,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평범한 즐거움에 집중할 때 비로소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돌아온다. 엄청난 성공이나 타인의 박수갈채가 없어도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인생이다. 무언가를 더 채우려 애쓰기보다 불필요한 집착을 비워내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인생의 진짜 수업이 시작된다.
결론: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를 찾아서
쇼펜하우어의 문장들은 때때로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실질적인 조언이 가득하다. 그는 세상을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가짜 위로 대신,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 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곁에 많은 사람을 두고도 공허함을 느꼈던 나에게, 그의 독설은 오히려 나 자신을 지키는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생은 짧고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의 고유한 내면세계를 가꾸는 이에게는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평온이 깃든다는 것이다. 화려한 껍데기뿐인 행복을 좇기보다, 비록 고독할지언정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이 책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지친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진짜 나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차가우면서도 명쾌한 해답지가 되어줄 것이다. 200년 전 철학자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 마음이 유난히 힘든 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 조용히 이 책을 집어 든 나 자신을 조금은 칭찬해 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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