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책 표지에 그려진 보노보노의 모습 때문이었다. 특유의 땀방울과 함께 조개를 든 보노보노를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 귀여운 캐릭터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예상보다 훨씬 묵직하고 따뜻한 위로였다. 서른이 넘은 나이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어른의 모습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틀린 길을 가기도 한다. 길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다시 돌아갈 힘이 없거나,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멈춰 서게 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어른이 되었지만, 나 역시 어른이라는 역할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 수밖에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바쁜 세상을 살아간다. 스마트폰만 켜면 나보다 앞서가는 또래들의 성공 신화가 쏟아지고, 잠시만 멈춰 서 있어도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함이 20대와 30대를 옥죄곤 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쉼'이란 곧 '나태'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 듯하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일상을 보내는 나 역시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진정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성공하고 잘 사는 인생이 반드시 화려해야만 하는 것일까? 가끔은 보노보노처럼 멍하니 하늘을 보고, 포로리처럼 고집도 부려보며, 너부리처럼 투덜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깊어졌다.
1.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미적지근한 커피'의 미학
우리는 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취업, 이직, 자기 계발 등 현대 사회에서 '노력'은 이제 필수 옵션이 아닌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김신회 작가는 보노보노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뜻밖의 위로를 건넨다. "꿈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어른"이라거나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들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얼마 전 정성껏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예상보다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렸을 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뜨거움이 없어 실망스럽지만, 천천히 마시다 보면 뜨거울 때는 미처 몰랐던 원두 특유의 단맛과 산미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미적지근함' 말이다. 보노보노는 매일 조개를 들고 다니며 장래에 무엇이 될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겁고, 무서운 일이 생기면 숨을 곳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압력이 너무 높으면 커피가 타버리듯, 우리 마음의 압력도 지나치게 높으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타버리고 만다. 작가는 "져도 괜찮아, 그건 그것대로의 얼굴이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승부욕에 불타는 너부리가 아니라, 지고 나서도 금방 잊어버리는 보노보노의 모습에서 나는 큰 해방감을 느꼈다. 꼭 뜨겁고 강렬한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미적지근한 상태라도 우리라는 원두가 가진 본연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오늘의 나를 긍정하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보노보노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2. 관계의 쓴맛을 달래주는 '설탕 한 스푼' 같은 솔직함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주변에서도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로 업무 자체보다 인간관계를 꼽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고,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고민이 생겨 휴대폰 연락처를 뒤적이다가도 정작 마음 편히 연락할 곳이 없어 씁쓸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은 이런 우리에게 '솔직해지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서로에게 서운한 점을 가감 없이 말하고 때로는 유치하게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상대를 미워하기 위해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나 지금 이 부분이 속상해"라고 자신의 상태를 정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솔직함이 무례함이 될까 봐, 혹은 나의 약점이 될까 봐 진심을 숨기기에 바쁘다. 하지만 쓴 커피에 설탕 한 스푼을 넣으면 맛이 한결 부드러워지듯,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나의 서툰 진심을 고백하는 것은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마법이 된다.
김신회 작가는 "솔직해지는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이해하려 에너지를 쓰기보다,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인정해버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롭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편안할 수 있는 관계의 거리를 찾는 일이다. 관계 때문에 마음이 써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라면 보노보노의 솔직함을 빌려보는 것이 좋다. 그 달콤함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3. 변하지 않는 소소한 행복, '커피 향' 같은 일상의 발견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새로운 기술과 유행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보노보노의 숲은 늘 평화롭다. 계절이 바뀌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가 그곳의 전부다.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릴 때 나는 향기를 사랑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원두를 갈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 피어오르는 그 향기만큼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런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대단한 성공이나 변화가 없어도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고, 즐겨 찾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는 사소한 반복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다. "재미있는 일이 끝나면 재미없는 일이 시작되겠지만, 재미없는 일이 끝나면 다시 재미있는 일이 시작될 거야"라는 보노보노의 단순한 믿음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철학이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사실 가장 불안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럴 때일수록 변하지 않는 나만의 루틴과 소소한 즐거움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향기로운 커피 향처럼 우리의 일상을 은은하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행복은 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아주 사소한 모습으로 숨어 있다.
[결론] 서툰 나를 안아주는 법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덮으며, 성공만을 쫓아 달렸던 자신에게 잠시 멈춤을 선물하기로 했다. 주변의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에서도 단맛을 찾아내는 긍정의 마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 책은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보노보노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 우리가 마시는 매일의 커피처럼, 우리의 삶도 각자의 온도와 향기를 가지고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전하는 미적지근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서툰 어른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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